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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인, 특히 전자공학도들이 많은 정보를 얻어가길 바라며.. 책 냄새가 나는 블로그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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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느낀점'에 해당되는 글 1

  1. 2013.10.07 내 젊은 날의 숲 - 김훈 저



내 젊은 날의 숲


 사람들은 현실이 힘들 때 '장및빛 미래'를 상상하며 힘든 일상을 견뎌나가곤 한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것이어서, 우리가 겪는 어려운 일들은 그리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펼쳐지지 않을 때 좌절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상상해 낸 장및빛 (가짜)현실로 도피하곤 한다. 영화가 그렇고, 텔레비전 드라마가 그러하고, 소설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김훈의 소설들은 다르다. '화장' '내 젊은 날의 숲'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시대를 주제로 한 그의 소설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퍽퍽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솔직하게 그려낸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이야기고, 누구나 인정하지만 견디기 힘들어하는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돈의 문제와 병과 노화에 나약한 인간 육체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다. 


 '내 젊은 날의 숲'의 주인공 '조연주'도 우리와 같이 지극히 인간적인 삶의 무게감에 짓눌려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공금횡령으로 수감되어 석방되었다가 병들어 죽어가는 아버지와 그 간의 결혼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어머니, 몸담고 일해 온 직장에서 나와 계약직으로 하게 된 수목원에서의 근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이와 같은 가족과 돈의 굴레에 매여 사는 처지다. 삶이 이렇게 무겁고 퍽퍽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삶이 굴욕과 불행만을 강요할 때도 우리는 삶을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주인공은 계약직으로 일하게 된 최전방 수목원에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사계의 자연과 감각적으로 교감하고 주위 사람들과 부딪히며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해나간다. 그 과정이 위의 물음들에 답을 하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 삶은 고해다.


 김훈은 삶의 아름다움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삶의 어두운 진실들을 철저히 파헤쳐 밝힌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인간의 삶 또한 자연계와 같아서, 우리는 금전관계와 이해관계에 따라 먹고 먹히는 관계에 매여 살게 된다. 또한 인간은 육신을 지닌 유한한 생명체이므로, 우리는 우리 육체를 좀 먹는 병과 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공금횡령으로 수감되어 복역하다 석방이 된다. 수감생활은 아버지의 지병이었던 고혈압 증세를 악화시켰고, 그는 아내가 혼자 살라고 마련해 둔 작은 아파트에서 간병인의 보살핌 속에 서서히 죽어간다. 양한방을 통틀어 백약이 무효이고, 모든 치료법이 손쓸 틈도 없이 자신의 세포가 하나하나 죽어가고 육체가 썩어가는 냄새를 풍기며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은 우리 삶에서 멀리 있지 않다. 몇 년 전 나는 어머니가 갑상선 암 수술 후 요양차 계시던 호스피스 겸 요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중증 및 말기 암 환자들이 있던 그 곳은 하루에도 몇 명씩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곳으로, 어제까지 인사를 나누고 같이 나들이를 다니던 사람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문을 나서는 곳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 곳에서 있던 일들을 전해 들으며 우리는 병과 노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런 깨달음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아버지의 '몸이 삭아 들어가는 말기의 냄새'와 검버섯, 핏줄은 우리 삶의 덧없음과 나약함을 주인공에게 일깨워주기 충분했으리라.


우리 삶은 감각과 감정에 좌우된다


 김훈의 다른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주인공 조연주는 감각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한편으로는 감각을 제외한 언어와 사고로 어떤 깨달음이나 교감을 얻는 것에 매우 회의적인 사람이다. 주인공이 일하는 수목원의 연구소 실장 안요한은 주인공과 상반되는 인물로서, 감각이 아닌 언어와 사고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인공에게 일을 시키는 직장 상사로써, 그는 조연주가 그리는 그림을 통해 과학적인 연구 성과를 얻으려한다. 그는 식물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끼기 보다는 분석하고 연구할 대상으로 여기고 대한다. 주인공이 식물과 자등령 수목원의 색깔과 소리, 그리고 냄새, 맛을 온전히 느끼는 것과는 상반된다. 주인공은 창 밖으로 펼쳐진 숲의 신록을 바라보면서, 잠들 무렵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비 온 후 올라오는 흙과 풀 냄새를 맡으면서, 데친 나물을 씹고 맛보면서 숲을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인다. 김훈은 감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끼고 즐길 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자극적인 감각들에 둘러싸여 산다. 텔레비전을 켜면 선정성과 가십거리가 넘치는 예능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시끄러운 비트와 리듬, 자극적인 가사로 넘실대는 대중가요는 우리의 귀를 멍멍하게 만든다. 인공조미료와 소금, 설탕은 우리 미각을 마비시켜 버린지 오래다. '화장'에 나타나는 강렬한 색채와 피부에 자극을 주는 화학물질들로 가득한 화장품들, 인공조미료로 가득찬 배달음식은 감각을 제대로 느끼고 즐기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내 젊은 날의 숲'에 등장하는 읍내 중국집에서 첨가제가 가득 들어간 중화요리와 독주를 들며 음란한 노래를 불러대는 군인들의 모습에서도 작가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주인공이 자연을 관조하고 느끼며 마음의 치유를 얻는 모습은, 작가가 우리들도 섬세한 감각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고 삶을 고양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세히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 '내 젊은 날의 숲'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감정 표현에 매우 섬세한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에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김민수 중위가 매우 절제된 모습으로 이를 표현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논리보다는 솔직한 감정의 표현에 더욱 익숙하다. 주인공이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느끼는 애틋한 마음이 그러하고, '상추쌈이 먹고 싶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죽어간 오빠의 유골을 기적적으로 되찾은 노파의 처절한 슬픔이 그러하고, 평생을 남편의 입신에 바쳤다가 그 육체적, 사회적 몰락을 지켜보고 애증을 느끼는 주인공 어머니의 애증이 그러하다. 아마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주인공이 아버지의 유해가 산골될 때에 스님이 외우던 반야심경의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차가운 논리로 설명되는 삶의 이치보다는 뜨거운 감정에 더욱 마음이 끌릴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왔고, 가족에 대한 기억들을 지니고 살아 나갈 것이다. 이 피로 맺어진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생명체의 가장 원시적인, 종족 보존을 위한 욕구에서 제 피붙이에게 그토록 심한 애착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이 '혈육'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항상 애틋함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주인공과 어머니를 괴롭히는 할아버지와 그 말 '좆내논'의 기억을 살펴보자. 주인공 어머니는 자신의 시아버지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보살펴왔다는 비루먹은 말 '좆내논'에 대해 끔찍한 기억을 지니고 있다. 이 볼품없는 말의 존재는 자신을 속박해 온 궁상맞기 그지없던 시집살이와 구질구질한 시아버지와 남편을 뭉뚱그려 상징하는 존재이다. 주인공은 유년시절의 짧은 몇 년 동안만 그 말을 보아 왔음에도 그 말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말은 유령 같은 형상으로 주인공과 어머니의 꿈 속을 맴돌곤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말의 기억은 혈연으로 이어진 주인공의 기억에서 잊혀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성병에 걸린 유흥업소 접대부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더럽고 치졸한 방법으로 번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부양해 온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도 눈물겹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가족만은 끔직이 챙기는 모습은, 어쩌면 자식만을 바라보고 아득바득 살아가는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의 대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사랑과 미움이 섞여 있는, 이 애증어린 가족에 대한 기억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가족애는 5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 백골의 모습으로 오빠와 재회 한 노파의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노파는 일종의 예지몽을 꾸고 국군 유해발군단에 오빠의 유해를 찾는 신청을 올리고, 기적적으로 전장에서 죽어 백골이 된 오빠와 재회하게 된다. 시간을 초월해서도, 오빠가 죽은 후에도 어떻게 해서라도 헤어진 오빠와 만나겠다는 집착은 눈물겨운 혈육애, 가족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노파에게 어린 시절 밥상에 마주앉아 상추쌈을 나눠먹던 오빠의 모습이 사라졌을 때의 허전함과 상실감을 생각해보자. 매일 같이 밥을 같이 먹던 가족 하나가 사라졌을 때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겠는가. 식장에서 오빠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를 들었을 때 노파는 다시는 좋아하는 상추쌈을 다시 먹이지 못할 그 상실감과 슬픔에 오열했으리라. 내가 아는 교수님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사랑과 정을 많이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별이든 이별이든 헤어졌을 때의 상실감이 그만큼 클 것을 알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는 헤어지고 잃을 때의 상실감이 크더라도, 누군가 나를 그만큼 생각해준다는 것은 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만큼 값진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매일 힘든 삶을 살아가며 삶의 무게에 지치곤 한다. 하지만 그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이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은 치열한 약육강식의 장이며, 매정하고 온갖 부조리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우리는 감각과 감정을 온전히 누리며 즐길 수 있고, 좋든 싫든 우리를 사랑하고 생각해주는 가족들이 있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진 후에도 그들의 기억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김훈은 주인공이 숲에서 1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을 보여주며, 그래도 삶은 살만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posted by loveoc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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