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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인, 특히 전자공학도들이 많은 정보를 얻어가길 바라며.. 책 냄새가 나는 블로그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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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1권 느낀점'에 해당되는 글 1

  1. 2013.04.29 대망 (야마오카 소하치 저)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일본에는 대망이 있다!


대 망


 2만 페이지. 1페이지를 읽는 데 3분이 걸린다고 한다면, 6만분. 1000시간이 걸려야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그것도 오롯이 책만 읽는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하루 2시간을 읽는다고 치면 500일이 걸리고, 하루 8시간을 읽는다고 해도 125일이 걸리는 분량이다. 그런 방대한 분량을 가진 이 대하소설의 제목은 "대망"이다. 진취적인 느낌을 물씬 내는 제목이 왠지 모르게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그런 도전심을 부른 것은 두 사람의 영향이 컸다. 한 사람은 고등학교 때 한문 선생님과 한 명은 작가 조정래이다. 아무튼, 대학교에서 조정래 선생이 대하소설을 읽을 것을 권유하는 말을 읃고, 친구와 함께 대하소설에 도전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사실 대하소설은 중간에 끊기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시작조차 안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도전의식'까지 가지면서 읽으려고 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도서관에 운 좋게도 있었다.


 그 1권을 읽으면서 떠오른 작품은 역시 삼국지다. 삼국지는 중학생 시절부터 읽었고, 또 코에이 사의 게임과 맞물려서 유난히 좋아했던 작품이라 자꾸만 이 작품과 연관 지어 보게 되었다. 두 작품은 모두 천하가 분열되고 여러 호걸들이 등장하여 다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때문에 수 많은 인간 군상이 출연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러한 소설들의 재미가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던 신분에서 승승장구하여 권력을 가지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고, 또 개인적인 욕심을 넘어서는 충성과 의리의 서사가 남자들이 가지는 일종의 로망을 자극한다. 거기에 덧붙여서 기발한 책략과 정치적 승부수들은 극을 더 맛깔나게 하는 양념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국지는 언제 봐도 항상 큰 재미를 주고, 그만한 몰입도를 느끼게 하는 다른 작품들을 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남성스럽고 호방한 기개가 주조를 이루는 삼국지에 비해 대망은 다소 처연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의 거대한 힘 앞에서 초라한 인물들의 모습은 어느 비극의 주인공들에 더 가깝다. 그러한 특성은 난세 속에서 '남자들의 싸움'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싸움을 벌여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비중을 차지하는 데에서도 파악된다. 가령 다케치요(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어머니인 오다이는 14살의 나이에 정략적인 차원에서 히로타다의 부인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권력 관계가 급변함에 따라 아들과 이별한 채로 또다시 다른 상대와 정략결혼을 해야만 한다. 오다이의 첫 번째 시어머니는 공교롭게도 그를 낳은 생모 게요인이다. 큰 오빠인 노부모토는 작은 오빠인 노부치카를 음모에 빠뜨려 제거하려 하는데, 그 때문에 노부치카는 히사로쿠라는 이름으로 오다이의 부하로 지낸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면서도 모르는 척 하면서 지낸다. 또한 현재의 남편인 히사마쓰와 전 남편인 히로타다는 서로 칼끝을 겨누는 사이가 되어버려 항상 살얼음판 같은 신세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오다이는 그러한 세계에 분노하고 절망하기보다는 '인종'의 태도로써 살아간다. 그의 전 남편인 히로타다 역시 약소한 성의 성주라는 처지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데, 나중에 그의 심복에 의해 칼에 찔리는 순간에 그 때문에 '사는 것이 무서웠다, 나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다.'라고 말하면서 잘 찔렀다고 말한다. 그가 느꼈을 중압감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나약한 자가 약함으로 무시되기보다는 동정 어린 시선을 자아내는 서술에서 그러한 비극성이 느껴졌다.


 충성을 다한 주군이었던 히로타다를 찌른 하치야는 인생을 알 수 없는 도깨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영화에서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이라는 것은 동일하나 보다 우울한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문이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대상을 위해 실제 생명이 사라지고 개별적인 인생들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난세일수록 약한 자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택일을 강요하고 괴로워하고 주저한다. 그 속에서 약한 자가 택할 수 있는 저항방법은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말이다. 1권에서는 그러한 오카자키 사람들의 바람을 주로 그렸다. 남은 책들에서 그러한 시대적인 사명 혹은 비극을 헤치고 등장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행보가 시작될 것이라 예상된다.


 그리고 여러 인물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철저히 희생당하며 채이는 여인들의 삶이나, 주군의 명예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가며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노부모 히로타다 같은, 세력이 작은 성주들은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철저히 개인의 삶은 파괴되며, 자신의 의사와는 상반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도 있다. 시대의 유력자였던 노부히데 역시 밖의 싸움도 버거운데, 집안 간의 갈등으로 벌어지는 '안의 싸움'을 한탄하며 소멸해 간다. 큰 권력을 가진 자이거나 작은 권력을 가진 자이거나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들을 떠받들고 유지해가는 자들 역시 충성이라는 단일한 코드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권력의 비정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슷한 시대적 배경인 이순신은 충성이라는 관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가치를 위해 전장에 생을 바친 것이 아니다. 그를 노리는 세력은 마주한 일본군도 있었지만, 그가 충성을 바치고 있는 조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을 벗어난 싸움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싸우는 싸움이다. 부하는 충성을 바치고 주군은 부하를 위한다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질서마저 무너진 채 끊임 없는 불신과 모략이 난무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마가와 군의 셋사이 선사는 싸움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불도를 실현하고자 한다. 1권은 다케치요가 출생에서 셋사이 선사의 휘하에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것이 전체에 걸친 싸움의 배경이자 원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1권을 읽고서 재미가 없으면 관두려고 했지만, 다행히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맘에 들기도 할 뿐더러, 선생님께서도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그러한 열풍이 불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궁금증도 생긴다. 그리고 나를 가르쳐주셨던 분을 들뜨게 했던 서사의 힘이 무엇인지도 알아볼 예정이다. 먼 훗날에 나도 군대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어떠하더라고 말할 수 있게, 더욱 열심히 읽고 고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다 읽으신 분은 VIEW 꾹 꼭 눌러주세용~!!

posted by loveoc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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