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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인, 특히 전자공학도들이 많은 정보를 얻어가길 바라며.. 책 냄새가 나는 블로그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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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에 해당되는 글 1

  1. 2013.09.23 돈키호테 독후감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

독후감 대회 장려상 입상 작품 <돈키호테>입니다. 역시 상 받을 만한 글들은 클래스가 다르군요 ㅜ^ㅜ...


돈키호테

 

 

 


작년 초겨울 어느 밤, 올림픽대로였다. 은근한 주황빛이 살얼음 낀 한강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난 감상적인 분위기에 취해있었고 그 때 내 귓가엔 노랫가락 구절 하나가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야, 돈키호테, 라만차의 기사!"


힘차게 울려 퍼지는 피날레곡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던 그 때, 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소설 [돈키호테]을 뮤지컬로 각색한 공연을 공군 대상으로 할인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먼저 예매해서 관람하러 갔던 터였다.


되돌아보면 내가 초등학생 때 처음 돈키호테 이야기를 읽은 뒤로 그는 항상 내 삶의 우상이었다. 기사 소설에 심취해 자신이 기사라고 착각한 나머지 낡은 창과 비쩍 마른 말, 충실한 시종을 데리고 정식 기사로서의 모험을 수행하기 위해 홀연히 길을 떠난 돈키호테. 여행길에서 끊임없는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그는 특유의 자신감으로 굴하지 않고 맞서나간다. 결국 큰 상처를 입고 마차에 실려 집으로 실려오지만 그가 길 위에서 보여준 용기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여태껏 읽었던 여러 문학 작품들 중 내게 이만큼 영향을 끼친 것은 [돈키호테]가 유일무이했다. 이상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대로 실현하고자 달려가는 것이 항상 내 삶의 방식이었다. 돈키호테는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준 영웅이자 내가 지칠 때마다 옆에서 용기를 불어넣어준 조언자 같은 존재였다.

 


 

시작은 고등학교 자퇴였다. 일학년 때 마음껏 놀았던 탓에 내 내신 성적은 내가 지망했던 명문대를 가기엔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내신을 떨쳐내기 위해 자퇴할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다들 말렸었다. 하지만 난 내게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 난 목표했던 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다.


한참 대학을 다니다 보니 이번에는 외국인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그것도 한국 남성 사이에선 전설 속 존재와도 같은 일본인으로. 그래서 외국인과 교류하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대표도 지내고, 일본인들이 자주 온다는 한국어학당을 전전했으며 한국에 새로 들어오는 일본인들을 마중하러 인천공항까지 픽업 서비스를 가기도 했다. 몇 달간 노력한 끝에 난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어릴 적 꿈을 한 번 이뤄보고 싶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은 환경운동가였기에 각종 야생동물로 유명하고, 또 원시적 자연이 보존된 대지의 크기가 한반도 절반에 달하는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가는 것은 일생의 꿈이었다. 치열한 노력 끝에 옐로스톤 공원의 바로 근처 학교로 갈 수 있었고 시간이 될 때마다 난 공원에 가서 늑대와 사슴을 관찰하며 지냈다.


 

 

 

 

 

 

 

그렇다고 가서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전공인 경제학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안목을 갖추었다고 자부하게 된 나는 귀국한 뒤에 단신으로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에 뛰어들기도 했다. 신흥 시장을 탐방하고 세계 경제의 미래를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언급할 수 없는 수많은 모험들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난 세상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항상 내 삶의 목적을 더 중요시했었다. 몇몇 사람들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유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내 인생의 목표는 무모해 보이더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즐기는 것이었다.


보통 그렇듯이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끔은 처절한 실패를 겪기도 했다. 지금도 생생한 악몽이 하나 있다. 어느 여름날 새벽, 넘쳐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모터바이크를 몰아대던 난 학교 캠퍼스를 고속으로 빠져나오다가 굳게 닫힌 철문에 정면으로 들이박는 사고를 겪은 것이다. 그 사고로 난 몇 달간 병원에 누워있어야 했으며 심각한 전신 부상과 상당한 후유증이 남았다. 내게 있어 그 철문은 뭐랄까, 돈키호테의 풍차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자아도취로 충만했던 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문이 닫혀 있으리라고 예상했으면서도 자만심에 똘똘 뭉친 나는 무의식 중에 현실을 외면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작중에서도 기사 소설을 읽고 간접적으로 자아도취에 빠진 돈키호테는 여행 초반기 자신의 눈앞에 놓인 풍차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찔러야 할 거인으로 착각해 뛰어들었다가 중상을 입게 되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원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었다고 믿었던 그 때, 그 사고는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는 무한한 추진력과 자신에 대한 굳은 신뢰로 모험적 삶을 살아간 인물이었다. 내가 실제로 미친 기사로 유람을 나선다면 곤란한 일이겠지만 삶에 대한 그의 자세만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삶에서 용기와 낭만성을 간직할 수 있는 길은 바로 돈키호테처럼 살아가는 것이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일렀다. 한 번의 사고는 날 낙담시키기에 충분치 않았다.


병원에 누운 채 난 돈키호테를 다시 한 번 읽고 있었다. 2편의 말미에서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임종의 순간과 맞닥뜨렸을 때, 아직도 주인을 따르고 그의 말을 믿는 산초는 이렇게 그의 용기를 북돋아준다. "주인님, 죽으면 안 돼요. 저의 조언을 들으세요. 그리고 오래 사셔야 해요. 이 세상에서 인간이 행하는 가장 큰 광기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거예요." 결국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던 무렵 난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예전보다 조금은 겸손해진,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로 새 세상을 맞이했다.

 

 

 


초판이 발간된 지 어언 400년이 흘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 돈키호테의 해석은 점점 풍부해지고 그에따라 가치도 올라갔다.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을 되풀이해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교훈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세르반테스는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게 되었다. 돈키호테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요새 유행하는 힐링의 원조 격인 셈이었다.


시대의 엄중함 때문에 정상인이 아닌 광인을 주인공으로 삼아야 했고 그나마도 다른 작가의 글을 번역한 마냥 글을 써야 했던 세르반테스. 그리고 종교의 광기, 남녀간 자유로운 사랑의 억압, 세습제도, 부당한 재판 등 사회의 부조리를 목도하고서 그걸 풍자했던 세르반테스의 위대한 주인공, 돈키호테.


이상주의의 상징인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인 산초 판사 두 주인공이 합동으로 이루어내는 유쾌한 모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돈키호테를 통해 어린이들은 만화적 재미를 찾을 것이고, 10대들은 자신이 앞으로 진출하게 될 사회의 창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며 성인들은 굴곡의 연속인 삶에서 자신이 견지해야 할 태도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내 나이 스물넷. 나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적인 자세는 아직 무르지 않았다. 제대 뒤에 난 1년 동안의 유라시아 대륙 일주를 계획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볼 예정이다. 그 때의 나는 2년만에 다시 읽은 돈키호테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어느 한 사람이 꾸는 꿈이 결국에는 허무하게 끝나버릴지라도, 난 그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울인 삶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소설 돈키호테의 시 한 구절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주제곡을 함께 인용하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나의 달콤한 희망이여,

불가능과 잡초를 헤쳐가나가며

그대가 만들어놓고 이끄는 그 여정을

강건히 가고 있네.

그대가 죽음과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도

두려워하지 마라.

게으른 자들은 명예로운 승리라도 어떠한 호박도 얻지 못하고,

행복해질 수 없다네.

운명에 대항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온화한 게으름에 넘겨주는 자들이라네.

사랑이 그 영광을 비싸게 파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며 정당한 일이라네.

기호에 따라 감정하는 보석보다

더 비싼 것은 없으니.

싸게 주고 산 물건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확연한 일이어라.

아마도 사랑의 집념은 불가능한 일을 해낼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나의 집념으로 역경을 헤치며 사랑을 게속하리라.

그리고 나는 

지상에서 하늘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는다.

(돈키호테의 노래 중)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해도. 가자! 갈 수 없더라도. 이 몸! 지쳐 쓰러져도. 모든 악을 물리쳐서,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세상 품격 높이는 것.

이게 내 길! 그 꿈을 따라, 쓰러지더라도 굴하지 말고 정의를 위해 싸우고 싸우자. 하늘의 뜻이라면 지옥엔 못가랴!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이 한 몸 조롱받더라도.

싸우리! 끝까지 용감하게. 가자! 저 별을 향하여.

(뮤지컬 주제곡 '이룰 수 없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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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oveoc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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