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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인, 특히 전자공학도들이 많은 정보를 얻어가길 바라며.. 책 냄새가 나는 블로그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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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호'에 해당되는 글 1

  1. 2013.06.03 오발탄 (이범선 저)

고등학교 교과서 문학책에서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책의 일부만 소개되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오발탄의 full story로 접하고 포스팅 올리겠습니다.


오발탄


 오발탄을 읽기 전에 중학교때 '학 마을 사람들'이라는 또 다른 이범선씨의 소설을 교과서에서 처음 접했을 때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구한말에서 6.25까지에 이르는 우리민족의 수난을 학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었다. 이때는 단지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다시 읽어 본 오발탄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주인공 철호는 아주 불행한 인물이다. 쥐꼬리만한 봉급 때문에 극심한 생활고로 아픈이를 빼지도 못하고 나일론 양말을 사면 오래 신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값싼 목양말을 살 수 밖에 없는 계리사 사무실의 서기 송철호는 양심을 지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믿는다. 점심을 굶어서 허기진 배를 안고서도 도시락 주머니가 없어 홀가분하다고 위안을 삼으면서 해방촌 고개를 넘어 엉성한 집으로 찾아온다.


 삼팔선을 넘어 그리운 고향을 찾아서 '가자! 가자!'라고 헛소리를 외쳐 대는 미친 어머니의 쉰 목소리를 들으면서 송철호는 방으로 기어든다. 간단한 저녁을 끝내고 답답한 집을 나와 수많은 등불들을 바라보면서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삼촌이 사줬다는 빨간 신발을 곱게 받쳐 들고 잠든 딸아이의 머리맡에 앉아있는 만삭의 아내 얼굴에서 모처럼 가느다란 웃음을 본다. 고학으로 고생고생 다니던 대학 3학년을 결국 중퇴하고 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어 돌아온 동생 영호가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고 양담배만 피우는 것이 못마땅하다. 그런데 동생을 양심이니 성설이니 하는 것은 약한 자가 공연히 자신의 약함을 합리화 시키려고 고집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도 이제 도덕이나 규범, 법, 같은 모든 것들을 벗어 던지고 잘 살아 보자고 대든다. 모두가 잠자리에 들어 고요해진 순간 '가자!가자!'하는 어머니의 헛소리가 울리고 잠이 깬 명숙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벅차오르는 서글픈 눈물을 참지 못하고 쏟아버린다. 잠에서 깬 딸아이는 빨간 신발을 보고 머리맡에 신주 모시듯 곱게 놓고서 다시 잠이 든다.


 다음 날도 점심을 넘기고 허기진 배를 보리차로 채우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동생 영호가 권총 강도로 붙잡혔다는 것이다. 기어코 일을 벌인 동생을 면회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동생 명숙이는 아내가 병원으로 실려 갔다며 100환짜리 뭉치를 준다. 허겁지겁 병원에 왔으나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다. 그는 정신없이 뛰쳐나와 치과에서 이를 몽땅 빼내 버리고 배고픔을 느끼자 식당으로 가서 설렁탕을 시켜 먹고 택시를 잡아타고서 집으로, 병원으로, 경찰서로, 정신없이 오간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라고 투덜대는 운전기사의 말도 듣지 못한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물론 가난이겠지만 그러면 그 가난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로 영호의 말처럼 인간의 양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손끝에 가시와도 같은 그 양심을 빼버리지 못하고 가난 속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갑자기 그 당신의 '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철호도 결국 바르게, 양심적으로 가족의 부양을 위해 헌신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이런 것을 본다면 이 6.25 전후라는 현실에서는 영호의 억설, 그것은 억설이 아니라 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 즉 철호 같은 사람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 어찌 되었든 결국 아내의 죽음까지 맞이하게 된 철호는 돈 때문에 안 빼던 이를 무리하게 두개나 뺀 후 택시를 타고 피를 흘리며 그냥 가자고 한다. 


 여기서 어머니의 '가자'와 철호의 '가자'는 무엇인가에서 벗어나 어디로 가고 싶다는 의도는 같을지 몰라도 그의 어머니가 가는 곳은 이북이라는 뚜렷한 방향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철호의 가자는 곳은 뚜렷한 방향이 없이 어디든 이 암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다. 그만큼 철호는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이 아주 심했던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훑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난다.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영호처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불과 50년의 차이지만 지금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잠시나마 나를 50여 년 전으로 데리고 가서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고통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 이 작품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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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oveoc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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